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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 더 본' 섭식장애, 은유, 치료, 경계, 재조명, 총평

by Laku 2025. 4. 13.

영화 '투 더 본' 포스터

정신건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현재, 실화 기반 영화 '투 더 본'은 섭식장애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거식증을 앓는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병리적 접근을 넘어서, 정체성, 자아존중, 관계의 회복 등 삶 전반에 걸친 심리적 요소들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섭식장애

'투 더 본'은 감독 마티 녹슨이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섭식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이 점은 영화의 사실성과 진정성을 더욱 강화합니다. 주인공 엘렌은 20세의 젊은 여성으로, 거식증으로 인해 몸무게가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에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엘렌은 전통적인 병원 치료를 거쳤지만, 효과가 없었고 결국 가족은 마지막 수단으로 ‘비전이 독특한’ 정신과 의사 닥터 윌리엄 벡이 운영하는 공동 거주형 치료 프로그램에 입소시킵니다. 이곳에서 엘렌은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단순한 약물이나 식이요법 이상의 변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엘렌의 캐릭터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고, 타인의 염려에 냉소적으로 반응하며, 때때로 자신이 아픈 사실마저 활용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몸이라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이 섭식장애의 근본 원인으로 영화 전반에 드러납니다.

심리적 은유

엘렌의 섭식장애는 단순히 체중 감량이나 외모 집착이 아니라, 현실의 불안과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자기 통제 욕구의 표현입니다. 그녀는 가족 간의 불화, 양육자의 부재, 사회적 낙인, 예술적 실패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삶의 주도권을 잃었다고 느끼고, 그 대안으로 자신의 몸을 조절함으로써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으려 합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성공에 대한 압박, 비교와 평가, 정체성의 혼란 등은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에서 겪는 고통입니다. 엘렌은 그 고통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닥터 벡은 그런 그녀에게 단순한 치료법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그녀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보며, 간결하지만 깊은 말들을 던집니다. “죽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살고 싶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집단 치료의 의미

엘렌은 치료 시설에서 다양한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객관화하게 됩니다. 과체중을 두려워하는 이,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가는 이, 자해를 일삼는 이 등은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본질의 고통을 안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 공동체는 각자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자, 회복을 위한 공간이 됩니다. 집단 치료가 갖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관계적 환경. 이로 인해 엘렌은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실제 심리치료에서도 ‘관계의 회복’은 핵심 치유 요인으로 꼽힙니다. '투 더 본'은 그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작고 일상적인 대화와 행동 속에서 진심 어린 회복의 단서를 차분하게 담아냅니다.

죽음의 경계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엘렌이 가출한 뒤, 탈진한 상태로 자연 속을 헤매다 쓰러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환적인 순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마르고 차가운 상태에서 누워 있는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처음으로 외부에서 인식하게 되며, ‘나는 살고 싶다’는 미세한 의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후 병원으로 돌아온 엘렌은 처음으로 음식 한입을 먹고, 눈을 감고 작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것은 완치나 극복이 아닌, 회복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치유가 완벽한 해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선택들과 감정의 변화를 통해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투 더 본'이 단순한 청춘 영화나 질병 영화가 아닌, ‘인간 성장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영화 '투 더 본'의 재조명

현재,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섭식장애는 그중에서도 가장 낙인화되기 쉬운 영역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잘 먹으면 되지 않느냐”,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면의 내면세계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는 단지 ‘아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삶에 회의가 들거나, 자신이 싫어질 때,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누구든지 이 영화에서 희망과 현실이 교차하는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총평

'투 더 본'은 단순히 한 여성의 섭식장애 극복기라고 보기엔 너무 섬세하고 깊은 작품입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며,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향한 기대와 압박 사이에서 흔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영화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택하는 선택이, 얼마나 작고 조용한 결심에서 시작되는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그 작은 결심이 싹트길 바랍니다.